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연재를 마치며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26)]

  • 관리자
  •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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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활발해진 개인적 치유…사회·국가 노력 더 해지길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한 정현종 시인의 말은 참 맞는 말이다. 20년 동안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한 명 한 명이 전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크고 깊고 귀하고 용기 있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어떤 심리이론보다 ‘삶의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그동안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을 통해 스물다섯 사례 삶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상담사였지만, 그들은 내 삶의 스승이기도 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 하는 그들로부터 삶에 대해 더 많이 배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

돌아보면 올해에는 ‘심리 열풍’이 뜨거웠다. TV에서는 여러 상담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온라인 플랫폼 및 강좌에서도 심리 관련 콘텐츠가 넘쳐났다. MBTI는 혈액형만큼이나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널리 퍼졌다. 3년 가까이 진행돼온 코로나 시대에 쌓였던 마음의 문제, 즉 고립, 불안, 공포, 분노, 트라우마 등의 이슈가 폭발한 것이 이 열풍의 가장 큰 원인을 이뤘다.

과거에는 마음이 힘들 때 터놓고 말할 누군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힘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 또한 심리 열풍을 낳은 또 하나의 이유다. 마음이 힘든데도 들어줄 사람은 없다. 게다가 마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이러다 보니 TV나 온라인 등에서 나를 위로해 줄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날 위로할 ‘그 누구, 무엇’을 찾는
온라인 심리 콘텐츠·MBTI 인기
TV 속 상담 예능까지 ‘심리 열풍’

상담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는 그동안 크게 변화해 왔다. 내가 처음 상담학을 만난 1990년대 후반에는 외로움, 우울증, 각종 폭력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두려움, 불안, 분노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지는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 정신건강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 왔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치유에 대해서는 먼저 개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예전에 비해 심리상담소나 정신과 방문을 한결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다행스럽다. 정신과 마음을 보살펴야 할 때 가장 좋은 조합은 심리 상담과 약물치료를 겸하는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열, 기침, 콧물 등의 증상은 약으로 처방하고 잦은 감기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찾아 체력을 증진하거나 면역력을 강화하듯, 정신적인 병 역시 급한 증상은 약물을 사용하는 동시에 그 근본 원인을 찾아 노력하고 단련하는 게 중요하다.

현대사회는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마음이 힘들 수밖에 없다. 21세기 들어 스스로 자신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은 필수가 됐다. 몸의 근육이 중요하듯,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서는 힘들 경우 주변인들의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하며,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치유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접근에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부모가 무능하거나 지나치게 권위적일 때 아이들이 활기차고 행복하게 자랄 수 없듯, 국가가 무능하거나 과도하게 권위적일 경우 고통을 입게 되는 것은 국민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정신건강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는 사회와 국가의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코로나 이후 ‘마음 문제’ 관심 처럼
근원적 파악·관심·처방 뒤따라야

내년이면 JTBC <사건반장> 패널로 참여한 지 10년이 된다. 패널 초기에는 우리 사회가 점점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점점 더 잔혹해지고 지능화되는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요즘에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 많은 사건들의 근본 원인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빈부격차 등이었고, 개인적으로 사건의 뿌리가 되는 이 사회적 원인을 다뤄보고 싶었다. 정신건강 문제에서도 이런 근본 원인 파악이 중요하고, 그 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처방 없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그동안 ‘구해줘! 내 맘’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런 구조적 차원의 생각들을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에 깊이 감사한다.

새롭게 열리는 2023년에는 우리 모두 마음이 화창해지는 소식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사례들에서 만난 주인공들에게, 이 코너를 읽어준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연재를 마치며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

▶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1230160604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