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내 마음 속에 있는 ‘어린 나’를 가르쳐야 해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9)]

  • 관리자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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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만두고 싶지만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요

 

외로움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편안해하고 당연시 한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등의 집착형 범죄는 부쩍 늘고 있다. 너무 집착하거나 무심한,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그래서 중용이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자유로우면서도 온기 가득한 사회를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외로움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편안해하고 당연시 한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등의 집착형 범죄는 부쩍 늘고 있다. 너무 집착하거나 무심한,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그래서 중용이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자유로우면서도 온기 가득한 사회를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집착은 사랑과는 완전히 달라
자신뿐 아니라 타인도 망쳐 위험

스스로 외로움 공감하고 수용
건강한 이들과 새로운 관계 맺고
사랑은 다음으로 잠시 미뤄두길

■이야기

한마디로 저는 ‘집착녀’예요.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포함해서 20대 후반 지금 만나는 사람까지 네 명을 사귀었는데 다 제 집착 때문에 끝났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도 요즘 좀 힘든데 그도 떠날까봐 마음이 불안하고 무서워요.

썸을 탈 때까지는 집착을 하지 않는데 정식으로 사귀면 갑자기 소유욕이 생겨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하고, 연락이 되지 않은 채 2~3시간이 지나면 화가 나기 시작해요. 오만가지 상상을 하다가 연락이 닿으면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울기도 해요. 만났던 남친들이 몇 달이 지나면 다들 도망가더라고요.

저번 주에도 남친에게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가 크게 다투었어요. 저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더 집착하게 되고,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게 돼요. 친구들은 ‘일에 몰두해봐라, 취미를 가져라, 자기 개발에 시간을 써라’ 라고 조언하지만 저는 남친을 사귀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흥미가 없어요. 밤낮으로 남친하고만 붙어있고 싶어요. 그 사람이 저랑만 놀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십대 초반에 이별 후 너무 괴로워서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상담선생님이 제 집착이 애정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했어요. 아빠는 평생 가정에 관심이 없으셨어요. 매일 일 핑계로 밖으로만 돌아다니셨죠. 엄마에 무관심 했던 것은 물론 저희 자매의 학교생활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4년을 혼자 외국에 나가서 지낸 적도 있으셨어요.

엄마는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헤어지자고 협박도 했지만 아빠는 변하지 않으셨대요. 엄마는 우울증과 위장병을 달고 사셨어요. 엄마는 저희 자매에게 몰두하셨고, 그 결과 저희집 세 여자는 마치 한덩어리처럼 살았어요. 저희 자매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며 컸거든요.

엄마는 헌신적인 분이었어요. 모든 결정이 우리 자매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엄마에게 맞춰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물론 좋아서 그렇게 산 것은 아니에요. 언니는 엄마가 불쌍해서 그랬다는데 저는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엄마의 모습을 닮은 건가요? 주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굶주려 하는 거 말이에요. 아, 정말 싫네요. 20대답게 쿨하게 살고 싶어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에 등장하는 장면. 이 뮤지컬에는 집착과 납치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칼럼의 특정 내용과 무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에 등장하는 장면. 이 뮤지컬에는 집착과 납치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칼럼의 특정 내용과 무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상담

집착으로 힘들어하는 수애(가명) 씨. 오랜 시간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하지만 수애씨, 사랑과 집착은 완전 다른 거예요. 집착은 자신도, 타인도 다 망친다는 점에서 위험해요. 집착이 남녀 간의 연애에서 보이는 소유욕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뉴스에서 접하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이렇게 소모적이고 괴로운 집착을 왜 하는 것일까요. 저는 십년 전쯤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사람중독’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참여했어요. 그때 집착의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두 가지가 가장 많았어요. 하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애착 형성의 실패에서 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사귀었던 경험에서 야기된 불신에서 온 것이었어요.

수애씨 문제를 ‘애착(attachment)이론’으로 설명해보려 해요. 존 볼비에 의하면, 애착은 아동이 부모에 대해 가지는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이에요. 아동기 초기에 양육자가 아기의 필요와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해주고, 애정과 지지를 주면 아기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돼요. 반면 양육자가 아기의 신호에 적절히 반응해주지 못하면 아기는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게 되고요.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일평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 있어요. 안정 애착을 형성한 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편안한 성격과 인간관계를 형성하지만,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때 못받은 인정과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 일평생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애정을 갈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그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성과 없이 원점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반복하게 되죠. 여러 번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대는 상처가 되고 희망은 좌절이 돼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애착 패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답니다. 보통 부모님의 애착 형태도 함께 살펴보면 더 좋아요. 애착 문제는 부모님의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에요.

제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통해 조심스레 유추해보자면 수애씨의 아버지는 ‘회피형 불안정 애착’, 어머니는 ‘혼란형 불안정 애착’, 수애씨는 ‘불안형 불안정 애착’의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회피형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은 타인과 친밀하게 지내기를 원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고, 형식적인 대인관계에 머물러 있어요. 불안형 불안정 애착은 버림 받을까 하는 불안감에 두려워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요. 대인관계에서도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매달리는 경향이 있어요. 혼란형 불안정 애착은 두 가지의 특성을 다 보이는 유형이고요.

다행스러운 것은 수애씨의 애착문제는 수정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증상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요.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안정 애착의 배우자를 만나는 거예요. 배우자는 부모님에 버금가는 중요한 대상이기에 안정적 배우자는 매우 치유적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안정 애착인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운좋게 만났다고 해도 수애씨의 집착 증상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므로 수애씨가 먼저 변화되어야 해요.

■제언

우선 수애씨가 스스로를 돌보고, 가르쳐주어야 해요. 내 결핍을 채워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남자친구에게 쏟았던 힘과 에너지를 내 자신에게 쏟아보세요. 우선 나의 외로움과 불안감을 공감하고, 수용해 주세요. 타인에게 말하듯 위로해주어도 좋아요. ‘누군가를 절실하게 원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 네가 나빠서가 아니야’ ‘니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나는 알아. 오랫동안 정말 애썼어’ 같은 말들도 좋아요.

동시에 마음 속 어린 나를 가르쳐야 해요. ‘집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도리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집착은 독립적인 성인이 할 행동이 아니야. 집착하는 것은 네가 여전히 의존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거야’ 등등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면 무엇이든 좋아요. 수용과 분석과 교육의 과정을 반복해가면 서서히 성숙하고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건강한 이들과의 새로운 관계경험도 추천하고 싶어요. 좋은 친구, 좋은 상담사, 좋은 멘토 등 수애씨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집착하지 않고, 밝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안정된 애착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은 수애씨에게 가장 놓은 묘약이 될 거에요. 사랑은 조금만 미뤄 둬요. 언젠가 집착하지 않는 사랑의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순간이 꼭 오리라 믿어요.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내 마음 속에 있는 ‘어린 나’를 가르쳐야 해요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

▶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812155700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