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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재혼 남편의 자녀 폭행…부자간 대화 끊어졌어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6)]

  • 관리자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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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상처 보듬을 감정의 잔고
 │ 10년간 화목했던 가정…‘폭력 사과’로 갈등 풀어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증가했지만 우리나라는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정폭력 및 가족학대 발생률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의 짙고 긴 그림자로 인해 위기 속에 있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 위기의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길 바라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대화

남편과 저는 이혼의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만났어요. 남편에게는 8살 딸이 있었고, 제게는 6살·4살 두 아들이 있었어요. 저는 원래 소심한 성격인데다가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라서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남편이 두 번 만난 이후 적극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조용하고 편안한 성격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또 제가 키가 큰 것도 좋았대요. 만난 지 6개월 만에 재혼했어요.

10년간은 행복했어요. 다정한 남편이었고, 아들들에게도 잘해줬어요. 예쁜 막내딸도 태어났고요. 아들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점점 나아졌어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때 전교생 앞에서 억울하게 혼난 일이 있었는데 남편이 학교로 달려가서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내고 아이의 억울함도 풀게 된 일이 있었어요. 아들들이 그때부터 남편을 따르더라고요. 부재했던 남자 어른의 존재가 든든했겠죠. 남편이 운영하는 갈비집도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었어요.

문제는 코로나19(코로나) 이후에 터졌어요. 식당이 텅텅 비자 남편이 예민해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숨죽이고 남편 기분을 맞추었어요. 남편이 평소에는 자상하지만 다혈질이라 한 번 터지면 폭발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또 다른 문제는 저희 아이들이 모두 사춘기라는 것이었어요. 올해 딸이 고2, 큰아들이 중3, 작은아들이 중1이에요. 대출 이자도 못갚는 지경이 되자 남편은 점점 더 신경질적이 되었어요. 주로 아들들에게 화를 냈어요. ‘게임만 한다, 꼬박꼬박 말대꾸한다’ 라면서요.

가끔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소리도 질렀어요. 사춘기인 남자 아이들이 그걸 계속 참고 듣겠어요? 큰아들은 같이 소리를 지르고 대들기 시작했고, 작은아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경멸하는 얼굴로 빤히 남편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더 화가 나서 난리를 부렸어요.

큰딸은 큰딸대로 문제였어요. 저와 큰딸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저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한데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체육부장을 할 정도로 활발하고 성격이 강해요. 그러다보니 제가 좀 벅차서 살갑게 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큰딸이 남편에게 ‘난 내년에 수능 보고 나면 집 나가서 혼자 살 것이니 방이나 하나 얻어주고 신경 끄세요’ 라고 했다는 거예요. 남편이 꾸짖으니 ‘새엄마와 나는 피도 안섞인 남인데 왜 자꾸 가족을 강요하냐. 새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하나도 없는데!’ 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제게 ‘내 돈으로 니 아들들만 잘 먹고 잘 입히고 자기 딸은 콩쥐처럼 구박한 거는 아니냐’고 말하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거든요.

결국 올해 초에 사달이 나고 말았어요. 저희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 거예요. 문제의 그날, 여지없이 남편은 애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큰아들이 아버지한테 소리를 지르고 대들었어요. 남편은 큰아들의 따귀를 때리고 말았고, 작은아들은 바로 112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어요. 격리가 끝난 후 저희 남편은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았고요. 남편도 아들도 잘못을 빌었기 때문에 확대되지 않고 종결되었지만 그날 저희 가족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두 번째 결혼이니만큼 정말 잘살고 싶었어요. 요즘은 다시 가게도 살아나고, 남편의 짜증도 줄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제 아들들은 이미 마음이 닫혀 6개월 동안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고 있어요. 큰딸도 저를 피해 다니고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이혼을 해야 할까요? 제가 무슨 잘못을 해서 또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코로나19의 긴 유행 기간 동안 가정폭력 및 가족학대 발생률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의 짙고 긴 그림자 속에서 위기 속에 있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이다. 사진은 여성단체의 가정폭력 근절 촉구 시위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

■제언

민선씨(가명).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10년간 최선을 다하셨는데 이런 상황들이 생기니 얼마나 속상하셨어요. 재혼가정의 성공 여부는 자녀들의 적응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세 아이가 다 부적응 문제를 보이고 있는데다가 힘이 돼줘야 하는 남편은 도리어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니 민선씨가 얼마나 외롭고 막막했을까요. 다시 벼랑에 선 심정, 이해가 됩니다.

저는 민선씨가 한 번 더 힘을 내셨으면 해요. 제가 보기에 이 가정은 회복될 가능성이 많은 가족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가정의 갈등 원인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으로 보여요. 우선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경제적 스트레스가 싸움의 도화선이 됐는데 다행히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아이들의 사춘기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사춘기 아이들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과격한 말투와 행동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순하고 착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원인이 확실한 병은 그 원인이 사라지면 증상도 함께 사라진다고 볼 수 있어요.

둘째, 이 가정은 화목했던 기간이 10년이나 된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이 기간은 양육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기(critical period)를 포함해요. 아이들의 건강한 심리 구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13세까지인데, 네 아이 모두 이 시기에 안정과 평화를 경험했고, 단란하고 행복한 기억들이 많아요. 친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화목한 새가정 덕분에 그 아픔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 것으로 보여요.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가정은 감정의 잔고가 충분한 가족이에요. 은행통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해요. 통장에 저금을 많이 해놓으면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모아둔 돈을 꺼내 사용할 수 있듯, 감정의 잔고가 많은 가정은 위기의 순간이 와도 행복했던 순간들을 꺼내 그 위기를 이겨나갈 수 있거든요. 10년간 좋은 엄마와 아내로 헌신해온 민선씨의 노력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의 합심과 노력일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여기서 노력이란 부부상담, 부모교육, 가족집단상담 등의 적극적인 행동들을 포함해요. 먼저 사춘기 아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아셔야 해요.

사춘기 아이들은 정서적, 신체적으로 매우 변화가 많은 시기예요. 키, 몸무게, 생식기, 골격 등 육체적 변화는 물론 호르몬과 뇌의 변화도 커요. 사춘기 시절에 여자 아이들에게 에스트로겐, 남자 아이들에게는 안드로겐이라는 성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호르몬으로 인해서 아이들은 예민해지게 돼요. 남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에게도 나오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은 아이들을 공격적이게 만들어요. 쾌락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도 증가하는데 이 호르몬이 많이 나올 경우 무분별하고 모험적인 선택을 하게 하고요.

청소년기의 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예요. 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완성되어 있지 않기에 자기절제나 억제 능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많은 편이에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쓴 것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사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해요. 슬쩍 넘어가서는 절대 안돼요. 가정에서 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그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어요. 단 1회라도 마찬가지예요. 한 번 성공한 폭력은 언제라도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큰딸의 외로움과 소외감의 문제, 이런 상황에서 막내딸이 느낄 불안함도 부모의 숙제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민선씨, 노력해야 할 내용이 많아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저는 이 과정을 통해 민선씨의 가정은 행복을 되찾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위기를 잘 대처해 가면 가족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어요. 부디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후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세계적으로 이혼률이 증가했지만 우리나라는 줄었다고 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던 가장들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갈등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정폭력 및 가족학대 발생률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의 짙고 긴 그림자 속에서 위기에 처한 가정이 여전히 많다. 위기의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길 바란다.

▶박상희 소장은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701161001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