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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저 성적 좋아요···그래도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5)]

  • 관리자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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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학업 스트레스-‘공부 감옥’ 속 아이들, 가둔 이는 부모 아닐까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저 성적 좋아요···그래도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대화

<다섯 사람의 이야기>

①정연이= “저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학원에 가거든요. 주말에도 아침만 집에서 먹고 계속 학원에 가 있거든요. 그런데 학원에만 있다고 다 해결되나요? 저 사실 학원에서 별로 공부 안 하거든요. 내가 학원에 안 가면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그냥 가있는 거죠. 집중은 안되고, 성적도 안오르고, 그만 두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고, 정말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학원에서 집에 오면 밤 12시가 다 되는데 그 때 학원 숙제를 또 해야 한다는 게 정상이냐고요? 집에 도착하면 피곤한데 집에 안 들어가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닐 때가 많아요. 학원도 싫은데 집도 싫어요. 갈 곳도 없고 얘기할 곳도 없고 정말 매일 눈물만 나요, 진짜.”

②미연 맘= “딸이 성악으로 입시 준비를 하는데 요즘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요. 병원에 갔더니 입시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작은 원이 생겼다가 점점 커지네요. 애가 매일 목 놓아서 울어요. 성악을 하는 아이라 목이 상하면 안되는데 매일 우니까 저도 아주 미칠 것 같아요. 저도 너무 괴로워서 ‘다 때려치자’ 라고 말하니 딸아이가 ‘어떻게 때려치냐’고 소리치면서 더 울고요. 도대체 무엇을 얻겠다고 애도, 저도 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③은희= “제 방은 쓰레기통이에요. 반지하 자취방 불을 꺼놓고 1주일 동안 아무 곳에도 안 나갔어요. 수업에도 빠졌더니 과 친구들이 찾아와서 창문을 두드리더라고요.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러 왔대요. 저도 제가 한심한데 애들이 제 방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어요. 저 정말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붙었거든요. 꿈에 그리던 관악에 왔는데 이제 와서 아무 것도 하기가 싫은 거예요. 공부는커녕 움직이기조차 싫고, 방도 막 어질러 놓고 싶어요. 무엇인가 정리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냥 너저분한 어둠 속에서 쉬고만 싶어요.”

④재용이= “저는 특목고에 다녀요. 성적도 좋아요. 근데 올해 마지막 날, 12월 31일 ‘입시 지옥’에서 탈출할 거예요. 제 꿈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거예요. 친구 몇 명은 알고 있고, 엄마,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았어요. 얘기 안할 거예요. 하지만 안다고 해도 부모님도, 저도 별로 바뀌는 게 없을 것 같아요. 부모님은 크게 놀라시겠지만 저는 신경쓰지 않아요.”

⑤민호 맘= “아이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이는 기분 아세요? 고3의 봄이 지났어요. 이제 반년만 버티면 고생 끝이에요. 제 아이는 대학 입시를 위해서 12년을 달려왔어요. 이제 와서 포기하면 그 동안의 우리 삶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거예요. 명문대 합격은 저도 원하지만 아이가 더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에요. 몇 달만 버티면 되니까 마지막 방법으로 약에 의존하는 거죠. 아이가 약을 먹지 않고서는 신경이 얇아질 대로 얇아져서 끊어질 것만 같다고 말해요.”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럼>의 주요 장면들.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럼>의 주요 장면들.

■제언

우리 아이들의 학습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가 심각하다. 정연, 미연, 은희, 재용, 민호(모두 가명)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더 심한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학업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이도 있었고, 최상위권 내신을 유지하다가 수능 며칠 앞두고 학교를 자퇴해버린 아이도 있었다. 대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왜 이렇게 절절하게 아파야 할까.

요즘은 태내(胎內)에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 한다. 좋은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한단다. 몇 년 전 드라마 <SKY 캐슬>이 명문대 입시를 향한 목숨 건 경쟁을 보여줬다면, 요즘 방송된 드라마 <그린마더스 클럽>은 더 어린 초등학생들의 영재교육에 목을 맨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런 드라마가 늘 인기 있는 것은 우리 현실이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부모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노력을 넘어선 집착에 가깝다. 어느 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고통들은 누구를 위한 피, 땀, 눈물이지?’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온 신경이 곤두 서 살아가야할 만큼의 경쟁사회다. ‘내 아이가 첫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 관문은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 거다’, ‘지금만 고생하면 아이의 평생이 편할 거다’ 라는 부모의 걱정과 생각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서울시내 한 대학교에서 2022정시합격점수 예측발표 및 특별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시내 한 대학교에서 2022정시합격점수 예측발표 및 특별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기획시리즈 ‘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에 따르면, 현재의 대학입시는 사회적 지위와 자본을 대물림하는 공공연한 수단이 됐다. 저소득층 가구가 평균 가구로 이동하는 데는 5세대(150년)가 걸린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는 부모가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다고 해도 내 아이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망가진다면 이런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 10대 청소년들의 정신적·정서적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문제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정, 친구관계, 경제적 어려움, 온라인 경험, 외모 중심적 사고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초·중·고생 90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년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조사에 의하면,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청소년은 33.8%나 됐다. 그 이유로는 ‘학업 문제’가 압도적 1위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자살은 2018년 10만명 당 5.8명에서 2020년에는 6.5명으로 늘었다. 위험도도, 상황도 점점 악화돼 왔다.

이렇게 아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공부로 얻는 이득에 대해 나는 의문을 갖는다. 고통을 감내하고 얻은 달콤한 열매는 명문대 입학일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고 행복한 인생이 보장되는가. 과거에는 학벌이 미래의 삶을 보장해줬지만, 21세기에는 학벌이 그것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창의성, 협업능력, 자기주도성 등이 더 중요한 시대가 이미 열려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서를 등한시하는 것은 학습적인 면에도 손해라는 사실이다. 입시를 이유로 아이들의 정서를 외면했을 때 도리어 그 정서적 문제로 인해 자녀의 학습 능력이 저하되고, 결국 입시결과도 좋지 않은 경우를 나는 수없이 지켜봐 왔다.

EBS 다큐프라임 <마음근력 훈련: 긍정적 정서 유발과 초등학생 수학 성적의 향상>에 따르면, 시험보기 직전에 긍정적 정서가 유발된 아이들은 부정적 정서가 유발된 아이들에 비해서 시험성적이 월등히 좋아졌다.

구체적으로 실험자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팀에게는 1주일간 있었던 행복했던 경험들을, 다른 팀은 기분 나빴던 경험들을 종이에 적게 했다. 이어서 수학 시험을 보게 했다. 원래 같은 수준의 수학 성적을 지닌 학생들을 모아 놓았던 것인데 실험 결과는 수학 시험 성적에 큰 차이가 생겼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이들에게 긍정적 정서의 유발은 편도체의 활성화를 낮추고 전두엽의 활성화를 증가시켜 아이들로 하여금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안한 아이가 공부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이 쉬운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며칠 전 만났던 한 여학생 얼굴을 떠올린다. 그 학생은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일밖에 없어서 매일 운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자기는 잘못한 일도 없고 365일 매일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고 있는데 삶은 왜 점점 더 힘들어지냐고 내게 따지듯 물었다. 이런 마음의 감옥 속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저 성적 좋아요···그래도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617162900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저 성적 좋아요···그래도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 [구해줘! 내 맘] 15회

▶https://www.youtube.com/watch?v=Mm0ZI-MUb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