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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미 상담위원] "만일" 《새가정》 2015년 3월호

  • 관리자
  • 201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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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월간지 《새가정》 2015년 3월호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박현미 상담위원

 


 

[평신도가 띄우는 묵상편지/욥기 3]


“만일”



 감기에 몸살까지 겹쳐 며칠 많이 아팠습니다. 환절기쯤엔 한 번씩 감기를 앓곤 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일찍, 좀 더 길게 찾아왔어요. 뜨끔뜨끔하던 목구멍의 열감이 온몸을 타고 돌며 손끝에서 발끝까지 욱신거리고 덜덜 한기까지 겹쳐 약에 취하고 잠에 취해 몽롱한 며칠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몸살의 여진이 남아 개운치 않습니다. 그런 몽롱한 중에도 틈틈히 각성시켜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욥이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기업에 자식까지 다 잃고 몸에 병까지 얻은 욥이 사람들의 비웃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간 자산은 무엇이었는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아프고 보니 욥이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친구들의 공박에 와해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세세히 자신을 변호하며 자기를 지킬 수 있었는지 놀랍게 느껴지더군요. 고통이 극에 달하며 심신이 지쳐 자신의 출생을 탄식하고 죽기를 자청하던 욥이었잖아요. 영육의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 있던 그런 욥이 세 친구들이 파고들던 세찬 공박에도 쓰러지거나 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 맞서 육신이 연약한 ‘나’를 지키며 영육의 흔들림과 뒤척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욥이 육신의 약함 속에 있던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친구들은 신정론을 내세워 그의 고난은 인과응보의 결과라며 욥의 불의함에 낙인을 쾅 찍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자기의 길을 그분이 아셔서 이 고난으로 자신을 단련시킨 뒤에는 순금같이 될 거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23:10). 고난을 당하기 전의 욥은 젊은이와 유지와 노인과 지도자 들의 존경과 축복을 받았고, 고아와 맹인과 빈궁한 자와 송사 중에 있는 모르는 자 들을 돌보았고, 모두들 그의 말을 존중하고 따라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처하자 그는 한순간에 비웃음과 조롱과 놀림거리가 되었고 서슴없이 얼굴에 침을 뱉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외치고 찾아도 하나님은 돌아보지 않으시고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니 욥의 고난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분이 더 컸을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그에 대한 세상의 존경과 존중은 그의 성공에 대한 평가였나 봅니다. 욥의 인격과 영성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죠. 그러니 욥은 부요함에 의해 의로운 자가 되었다가 모든 걸 잃으니 한순간에 불의한 자로 평가받는 부조리한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참입니다. 


 그러나 욥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의로움을 토로합니다. 세상이 불의라고, 죄라고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와 “만일” 내가 그 죄를 지었다면 사람과 하나님께 벌을 받고 낙인찍혀도 할 말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욥을 묵상하며 고통 가운데 자신을 지켜준 자산은 그의 굳건한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말로 태도로 묘사되고 있는 자아상이 보였습니다. 자아상이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각, 관념, 태도 등의 집합체로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자기 모습(자기 묘사)입니다. 욥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사람의 평가나 태도에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자아상을 가진 모습을 보이네요. 그의 마지막 변론에서 그 모습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통해 더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있습니다(31장).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은 자아상, 자존감, 자기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아상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자기 모습이라면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 내리는 평가, 즉 자기 평가입니다. 높은 자존감은 긍정적인 자기애를 나타내며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이 되기도 합니다. 자존감은 긍정적이고 당당한 자아상을 만들어주는 배경이 되기에 자존심이나 이기심과는 다른 말입니다. 욥은 자신이 사람들 앞에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이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기 모습을 그려나갑니다.

 “만일” 자신이 의롭지 않다면 사람과 하나님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게 될 거라며 높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자기애로 자신을 평가하고 사람들의 비난에는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자아상을 보여줍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기에 세상의 잣대로 의인과 죄인이 되는 이분법적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질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다의적 접근의 한 길을 우리에게 터준 것입니다. 


 요즘도 욥이 살던 시대처럼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교회와 교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외치는 교회와 교인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이 대우받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천 년 전 욥의 이야기는 인간의 완고함과 욕망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될 이야기인 거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 속에서 “만일” 나에게 그런 일이 온다면, “만일” 내가 친구들의 말처럼 그런 자라면, “만일” 내가 갑자기 나락에 떨어진 그라면......을 생각해봅니다. 내 정체성이 그 안에서 어떤 자원이 될지 상상해 봅니다.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인생의 험난함 속에서 자신과의 치열한 엎치락뒤치락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걸 욥을 통해 배웁니다.